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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y to remember

은희경 - 빛의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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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은희경 작가의 7년만에 나온 신작 [빛의 과거]를 읽었다. 7년만에 나온 장편 소설 만큼 역시 다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인물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 생각할 것도 많고 곱씹을게 많다. 아기를 보면서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얼른 재우고 읽고, 그리고 책을 읽고 다시 읽었다.



2.은희경 작가의 신작 [빛의 과거]는 2017년 중년 여성 김유경이 오랜 친구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읽게 되며 시작 된다.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 소설 속에 나오는 1977년 여대생의 기숙사 생활 - 3월 신입생 환영회, 첫 미팅과 학교 축제, 오픈하우스 행사등 기숙사 에서 일어난 이야기가 소개되는데, 실제 '김유경'의 기억과 다른 소설의 내용에 다시 한번 자신의 기억을 되돌아보는 이야기이다. 그 곳에서 룸메이트인 최성옥, 양애란, 오현수, 그리고 최성옥과 친한 송선미, 송선미의 방 룸메이트인 곽주아, 김희진, 이재숙의 7명의 여대생들의 이야기가 소개 된다. 등장인물이 많이 등장해서 나중에는 책을 읽다가 계속 앞으로 넘겨보면서 다시 보곤 했다.



3.1970년대 시대가 시대인 만큼, 순결을 강요하는 고등학교 교훈이나, 학도호국단이라는 이름으로 수업시간에 군사훈련을 받고 여대생에게 강요되는 학교가 마치 군대인양 보인다. 2017년의 주인공은 1977년 정치적 억압 속에서 부당한지 알면서도 회피하고, 자기 만의 미망에 빠진것에 대해 반성한다. 다양한 시대상들의 모습으로 과거를 회고하는 은희경 작가의 문체가 섬세하고 담담한 설명이 오히려 시대 상황을 더 반감시키는 것 같이 느껴졌다.



4.[빛의 과거]을 읽으면서 재밌는 부분은 은희경 작가의 삶과 비교하면서 읽는 것. [빛의 과거]에서 '김유경'은 지방에서 상경한 여대생 - 은희경 작가의 고향은 전주, 이대는 성적에 못미쳐서 온 여대와 청파동 - 은희경 작가 숙명여대 , 석사까지 학업을 이어오고 - 은희경 작가는 연세대 시석사, 졸업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 했다는 '김유경'의 설정이 은희경 작가의 프로필과 닮아있다. 그래서 이 주인공이 은희경 작가라 생각하고 은희경 작가도 이런 여대생이였을까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5.2017년에서 1977년을 회상하고 다시 돌아오는 구조. 소설을 읽는 내내, 응답하라 시리즈가 생각났다. 소설 버전으로 응답하라 1977 느낌. 그리고 응답하라 시리즈 드라마에서 남편 찾기 처럼, 소설 첫 장면 주인공 '김유경'의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쓴 소설가 친구가 나오는데 여기만 해도 친구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소설가 친구가 7명누굴까 찾는 재미도 있었다.



6.2017년의 김유경이 1977년 김유경을 보았을 때 과거의 나와 30년 친구 즉 타인이 바라본 나, 두 가지 시선의 나의 차이. 같은 시간과 공간을 나누어도 사람 저마다의 시선과 생각은 다르구나. 또 한번 느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도 또 다르고, 다름과 섞임에 대해 공감하면서 우리 자신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소설을 읽고 나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마치 이건 내 이야기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였는데 누군가에게 나의 행동이 편집을 당해 오해를 받은 나를 떠올렸다. 억울하고 해명하고 싶은데 이미 나에게로 왔을 때는 이미 나는 그런 사람이 되는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이미 상대편 마음대로 기억이 재편했을 때 분노, 외로움, 그리고 혼란을 일으킨다.



7.'멀고 높은 곳에서 홀로 불빛을 반짝이고 있는 남산타워. 그 너머 어딘가에 내가 두고 떠나온 밤 하늘이 있을것이다. 무심코 고개를 젖혀보니 별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태어난 곳을 떠나온 뒤 몇십, 몇백 광년의 미지를 통과해서 이제야 내게로 도착한 빛' (p111)
[빛의 과거] 소설 제목이 의미있게 다가왔다. 우리의 신경세포는 빛보다 느려, 우리가 현재라고 느끼는 순간 이미 그 시간은 흘러간 과거가 되, 우리에게 보이는 빛은 영원히 현재를 느낄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빛의 과거 제목 처럼, 과거의 시간에서 빛이 지금 어떻게 보이는건지 과거와 현재의 나, 타인과 나, 다른 시간에서의 나를 생각해보는 소설이였다.

 

 

 

 

 


그때 나는 어느 정도의 거리만 있었을 뿐 우리가 같은 공간과 시간대를 공유하며 나란히 서서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본 나와 내가 본 그녀가 마치 자석의 두 극처럼 서로 밀어내고 있었으므로 실제의 간격은 훨씬 더 벌어져 있었다. -p22


혼자라는 건 어떤 공간을 혼자 차지하는게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익명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뜻하는거였다. -p84


약점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감지하는 더듬이 하나를 더 가진다. 약점은 연약한 부분이라 당연히 상처 입기 쉽다. 상처받는 부위가 예민해지고 거기에서 방어를 위한 촉수가 뻗어 나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약점이 어떻게 취급 당하는가를 통해 세상을 읽는 영역이 있다. 약점이 세상을 정찰하기 위한 레이더가 되는 셈이다. 그들은 자주 위축되고 두려움과 자괴감에 빠지지만 그런 태도를 되도록 감춰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약점이 있다는 걸 공유하면 편해지길 하지만 무시당하는 걸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약점을 숨기고 방어하고 또 상처받았을 때 보이는 법을 연구하면서 타인을 알아간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약점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나를 조종하고 휘두를 힘을 가진다. 우리는 장점의 도움으로 성취를 얻지만 약점의 만류로 인해 진정한 원하던 것을 포기하거나 빼앗긴다. 어쩔 수 없이 약점은 삶의 결핍과 박탈을 관장한다. -p112


모범생들은 눈치를 본다. 문제을 낸 사람과 점수를 매기는 사람의 기준, 즉 자기를 어디에 맞춰야 할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답을 맞히려는 것은 문제을 내고 점수를 매기는 권력에 따르는 일 인것이다. 그렇게 그저 권력에 순종했을 뿐이면서 스스로의 의지로 올바른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모범생의 착각이다. 그 착각 속에서 스스로를 점점 더 완강한 틀에 맞춰가는 것이다. -p116


그동안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가지 않고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오현수는 모르는 것이 거의 다라는 생각을 하나 더 보태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다른 조건을 가진 삶에 대한 존중의 한 방식이었다 -p264


젊고 희로애락이 선명하고 새로 시작하는 일도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인생이 더 나았을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욕망이나 가능성의 크기에 따라 다른 계량 도구를 들고 있었을 뿐 살아오는 동안 지녔던 고독과 가난의 수치는 비슷할지도 모른다. 일생을 그것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해도 나에게만 유독 빛이 들지 않았다고 생각할 만큼 내 인생이 나빳던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제 세상이 뭔가 잘못됐다면 그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으려 했던 나의 수긍과 방관의 몫도 있다는 것을 알 나이가 되었다.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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