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은 작가의 연중무휴의 사랑을 읽었다. 같은 나이대의 작가인지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자 사람의 삶이 글이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첫 장부터 솔직한 그녀의 글에 놀라웠다. 페미니즘을 자처하는 (현재) 비혼의 여성 작가가 쓴 글의 영향력은 내게 크게 다가왔다. 아직 은 비혼인 그녀가 거리낌 없이 현재 남자친구와의 동거를 밝히고 그동안의 연애사를 고백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신기하면서도 솔직하고 당당한면이 내심 부럽기도 했다. 책을 다 읽고나서 그녀의 이런 모습이 삶에서 겪어온 숱한 이별들로 맷집이 단단하게 만든걸로 알았을땐 그동안 크느라 수고했다고 꼭 안아주고 싶었다.
나는 결혼을 하고 아기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 이미 전공 선택에 있어 직업이 정해진 안정적인 직장에서 10년간 다니며 게다가 페미니즘이라면 괜히 피하고 싶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이다. 자라온 환경이라든지 직업이라든지 현재의 상황를 비교해볼때 작가와 나의 삶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도 작가가 세상을 보는 눈이나 사람과의 여러 에피소드들은 왜이리 공감이 되는지.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것들은 다 던져버리고 마치 친구와 깊은 속내의 대화를 나눈 기분이 들었다. 지금의 남편에게는 절대로 말하지못한 흑역사들을 밤새 수다떨고 온 느낌이랄까.
처음에는 페미니즘, 비건, 탈코르셋, 바디 포지티브와 같이 그동안 알고 있던 단어들의 요소들과 전혀 다른 삶의 모습인지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서 그 결을 찾으면서 읽느라 딴 길로 몇 번 돌아갔다. 오히려 반감을 가졌던 문제들이 그녀의 삶에서 묻어나온 것들에 더 공감하며 나도 동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삶을 가치관을 잘 정리하며 글을 어떻게 이렇게 잘쓰는지 신기하다. 이런 글을 쓰는 그녀의 앞으로의 작가 인생이 기대된다.



때대로 풍경은 삶을 변화시킨다. 내겐 페미니즘이 어디 높은 곳에 있는 그런 풍경 같다. 모두는 길 어딘가에 서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가 나누고픈 풍경과 가까이 혹은 멀리 있다. 같은 풍경을 보기 위해 나는 먼저 길을 익혀야 하고, 차근차근 되돌아 가야 하고, 함께 가자고 설득해야 하며, 과정 중 때론 싸우거나 헤맬 수 있다. 갈 생각이 없거나 발이 느린 상대방에게 실망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정한 미경을 생각하다 보면 설령 풍경에 도착하지 못해도, 힘이 들고 답답하고 지루한 여정이라 해도, 누군가와 몸을 부딪치며 같이 걷는 과정이 목적지의 도달보다 더 소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략) 여전히 미경 때문에 벌컥 가슴에서 천불이 치솟을 때가 있다. 가장 이해하고 싶고 가장 이해 받고 싶은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는 일이란 어려우니까.
-p15~16
내가 상실의 가능성을 존중하지 못했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상대를 존중하지 못하는 일과 연결되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만남만큼 헤어짐은 중요하다. 거듭하며 배우고, 기쁨만큼 슬픔의 값도 치를 때, 그때 조금은 더 성숙해졌다고 표현하는거 같다. (중략) 아무리 해도 이별은 쉬워질 수 없지만, 가까이 해 온 이별 덕에 내 삶은 그전보다 제 값을 치루고 있다고 믿는다. 삶은 제대로 이별하기 위한 과정이고 가장 정확하게 이별하는 방법은 도처에 널린 상실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며 현재를 사는 것이라고도 믿는다. 슬픔을 메고서, 피하지 않고서, 비싼 값으로 비싼 앎을 배운 나의 밭에는 무성한 현재가 자란다. -p24
나는 가라앉는 게 무서울 땐 버둥거리길 멈추어야 떠오른다는 걸 과정 중 체득했다. 떠내려가는 주제에 말하자면, 어떨 땐 애쓰는 걸 멈추는 것이야 말로 삶의 영법일것이다. 무엇도 버리거나 포기하지 못하던 내 기질 혹은 소망이 가슴속에서 부력을 형성했음을 어렴풋하게 인지한다. 그러니 결혼에 대해서라면 나는 비혼주의자가 아니다. 그저 애쓰지도 부정하지도 않고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둘 뿐이고, 지금의 나는 허무맹랑했던 소망과 무관하지만은 않은 곳으로 떠내려가는 듯 보인다.
-p55
우리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이 반드시 긍정에 달려 있지는 않다. 사랑은 어느 날 마음 먹은 식으로, 실제로 존재하는 나의 감각을 지우는 식으로 존재하지 않으니까. 관계를 지속해 본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순간에도 사랑이 이어질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p108
네 결혼 소식을 전해 들은 날, 오래 전 서로 없인 못 살 거라던 착각과 생채기가 정말로 지나갔음을, 한 시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그 시절 그토록 바라던 미래에 도달하게 된 너를 생각하면 미지근하면서도 아득해졌는데, 나는 그 감정이 지금껏 겪어본 적 없던 기쁨이라는걸 알았다. 사람은 구원이 도리 수는 없지만 서로 극복 할 수 는 있다는 듯이, 우리는 서로를 소멸시키며 과거의 상상력을 넘어선 게 아닐까. (중략)좋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 같은게 사라진 시절에 대한 느슨한 기억으로 남았고, 그 자산으로 나는 괜찮지 않음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 내 연인을 돌보고 연인 역시 그가 가진 자신으로 나를 돌본다.
-p208
나는 매번 누군가와 가까워진 이유보다는 멀어진 이유를 잊어버린다 (중략) 아니면 관계란 가끔 이유 없이도 떠내려가기도 하니까 이유 같은 건 없었을 수도 있다.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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