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오천원의 투자를 하며 나는 그것보다 수 천배의 투자금을 거둬드릴 꿈을 꾼다. 토요일 저녁 아홉시 발표가 나기 전까지 만약 로또 당첨이 된다면 '난 뭐 살꺼고, 남편을 위해 내가 이것도 해주고, 그래 선심써서 뭐도 새로 사준다' 추첨을 기다리면서 꿈꾸는 집, 꿈꾸는 차, 꿈꾸는 가방이 전부 다 나에게 대입해보며 그것을 누리는 행복한 상상을 한다.
아쉽게도 (사실 아쉬울 것도 전혀없다) 이런 과대한 상상을 하고 나면 결과는 뻔하다. 로또를 사고 까먹고 얌전히 있어야되는데 이렇게 내 입방정으로 당첨안된거라며 다음에는 조용히 있어야 겠다고 다짐 한다. 하지만 이미 로또를 사는 순간부터 희망을 가지고 사기 때문에 쉽사리 입방정을 안하기란 쉽지 않다. 매 주 쓰디쓴 실패를 맛보지만 매주 이렇게 오천원씩 일년동안 투자해도 투자금을 거둬드린다면 아무렇지 않으니 다음 기회로 넘긴다.
매주 챗바퀴 돌아가는 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다. 월요일 아침이면 이번에 로또는 아쉽게 본전 찾기 했다는둥, 어느 지역에서 1등이 당첨되었는데 내가 매번 사는 로또 판매점이였다던지, 월요병에 가득한 직장인들은 일하기 싫다는말을 습관적으로 하며 이번주에는 꼭 로또나 당첨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그 대상이 바꼈다. 로또에서 주식으로 주식에서 다시 비트코인으로. '아니, 아직 비트코인 안하고 뭐해?'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은 장류진 작가의 '달까지 가자'를 읽었다. 이렇게 현실 세태를 그대로 담는 소설이 이렇게나 빨리 나오다니, 게다가 정말 재밌는 소설이 나오다니. 이틀동안 360쪽이나 되는 장편 소설을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요즘 책에 왠만해서 집중하기 어려웠는데, 피곤해서 그런가 괜히 집중력이 부족하고 생각이 다른데 있어서 그런가 했는데, 그동안 재밌는 책을 못만나서 그런거였다. 출근길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서서 읽다가 정류장에서 내려야되는데 마저 읽어야되는데 내리는게 아쉬울정도로 재밌다.
재미의 요소 중에 가장 큰 것은 공감이다. 소설의 내용과 공간이 나와 교집합이 있으면 재밌다. 공감할 수 있는게 많으니까 주인공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궁금해서 다 읽게 된다. 장류진 작가의 '달까지 가자'는 바로 그렇다. 평범한 우리가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된다. 소설이 아니라 마치 일기처럼, 누군가의 일상인데 마치 내가 감정이입하며 손에 땀을 쥐며 가슴이 뛰어 긴장되기까지 하다.
일상의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소설로 옮겨오면 어쩌면 지루하고 뻔할 수 있는데, 그 뻔함을 재미로 승화시키는 장류진 작가의 소설이 좋다. 소설 속에 나온 마론제과는 지금 내가 다니는 병원에 대입해도 다르지 않다. 직장생활이란 종류만 다를뿐 다 똑같구나 싶다. 이전에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 을 재밌게 읽은 독자라면 이 소설은 무조건 좋아할거라 장담한다.


그냥, 인생 자체가 그랬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해가 지날수록, 한살 더 먹을수록 늘 전보다는 조금 나았고 또 동시에 조금 별로였다. 마치 서투른 박음질 같았다.전진과 뒷걸음질을 반복했지만 그나마 앞으로 나아갈 땐 한땀, 뒤로 돌아갈 땐 반땀이어서 그래도 제자리걸음만은 아닌 그런 느낌으로,, 그렇게 아주 조금씩...... 천천히...... 서서히....... 차츰차츰...... 매일매일...... 하루하루...... 그뿐이었다. 대체 무엇을 감히 더 바랄 수 있을까?
-p98
지긋지긋했다. 아직 대리도 못 단 주제에 이런 말 하는게 웃긴다는 건 알지만, 벌써 신물이 났다. 보수적인 조직, 멍청한 리더, 짜디짠 박봉, 밀어주고 끌어주는 인맥의 부제, 배움 없이 발전 없이 개인기로 그때그때 업무 쳐내기, 별다른 혁신도 자극도 없이 평생 이 상태로 근근이 유지만 할 것 같은 정체된 업계...... 여기에는 도무지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p123
벌써 다 알고 있다는 느낌, 미래에서 나를 과거처럼 내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묘한 감각이 열었다. 언젠가 될지는 모르겟지만 내가 더 는 이 회사에 다니지 않는 때가 온다면, 그리고 그때 이곳을 그리워할 수 있게 된다면, 다른 게 아니라 정확히 바로 지금 이 장면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 나는 지금 이순간의 한복판에 서서 이 순간을 추억하고 있었다.
-p156
나는 참담한 심정이 되어 속으로 되뇌었다. 그런...... 그런 일은...... 있을수가 없어요...... 팀장님....... 회사 로그 같은 건 일상에 들어올 수 가 없어요...... 애초에 전체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심조차 하지 않고 자신이 만들어놓은 모순된 틀 안에서 불가능한 걸 요구했다.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팀장이 좋아하는 커피에 비유하자면 '뜨거운 아이스아메라카노 주세요' 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p279
스물아홉째 살고 있는덷 매년 처음 겪는 것들이 생긴다. 그런 게 문득 신기할 때가 있다. 막막할 때도 있고 때때로는 기가 막힌다는 느낌도 든다.
-p333

생각해보면 회사라는 공간이 싫은 건 사무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들 탓이었다. 내게 일을 주거나, 나를 못살게 굴거나,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하는 사람들. 회사 사람이 없는 회사는 귀신들이 퇴근한 귀신의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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